본질과 비본질
종교개혁 초기에 우리 믿음의 선진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본질이 무엇이며,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비본질이 무엇인지, 극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 진리, 교리는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행정, 운영, 제도는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자는 본질, 후자는 비본질입니다.
오늘날 교계와 공회는 비본질적인 면에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고 말합니다. 정직하게 따져보면 본질이 달라졌습니다. 누가 달라졌습니까? 우리는 그대로인데, 교계가 달라졌습니다. 우리와 하나였던 교단조차 이제는 다른 종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비본질이 바뀐 것입니다.
신앙의 체계에 비본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교회의 외적인 행정조차도, 본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고, 본질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공회는 왜 남녀분리에 철저합니까?” 공회 모태신앙의 흔한 불만인듯합니다. 공회 외에 모든 교단은 과거의 남녀분리를 철폐한 지 오래입니다. “남들이 다 하고있으니, 이제 우리도 늦었지만 대세를 따라가야 하지 않느냐? 그 비본질을 바꾼다고해서,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정말 비본질입니까? 진리와 신앙에 영향을 미지치않는 별개의 문제입니까? 남녀분리를 철폐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뻔히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무식하면 무모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악령은 항상 우리에게 “이건 비본질이지 않느냐”에서 부터 들어옵니다. 신앙생활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신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 않냐, 본질적인 것만 지키면 되지, 이런 불필요한 것, 시대에 맞지 않는 고집을 지킬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 말에 속으면, 처음에는 한걸음, 나중에는 열 걸음, 결국에는 백 걸음 천 걸음 물러서게 됩니다. 그 시작은 미약하나 후에는 심히 창대해집니다.
오늘날 교계는 “예배 시간”은 비본질인 줄 알았습니다. 교회의 사정과 현실 상황에 맞게, 각교회 별로 결정하면 되는 행정적 결정인 줄 알았습니다. 맞습니다. 예배 시간 자체는 비본질입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 예배를 1부, 2부, 3부로 나누었습니다. 새벽예배를 6시로 바꾸었습니다. 밤예배는 밤기도회로 변경했습니다. 비본질이니,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본질까지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비본질로 분류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신앙의 본질과 별개의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비본질이라 할지라도, 신앙을 기준으로, 복음에 합당하도록 결정해야 하지, 인본을 위하여, 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자유롭게 바꿔놓으면, 반드시 본질까지 무너뜨립니다.
교회의 모든 행정은 복음중심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계는 경영학과 행정학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합니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각 연령별로 예배 집단을 분류했고, 각 계층이 흥미를 가질만한 것들로 예배의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장년반은 아버지학교, 청년반은 소개팅, 중간반은 찬양예배, 주일학교는 율동과 만화. 오늘날 교회가 운영되는 방식이 이렇습니다.
진리와 교리, 신앙고백은 본질이니, 그런 것은 같은 것 바른 것을 지키면 되고, 위와 같은 것들은 비본질이니 각 교회마다 자유롭게 결정하여 운영한다고 합니다. 탁상공론이 되면 이렇게 됩니다. 진리, 교리, 신앙고백은 책상에서 공부할 때만 쓰면 되고, 신학교 시험 칠 때만 쓰면 되고, 이제 말로만, 지식으로만, 공식문서에서만,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며” 그런데 실제 예배당의 모습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단입니다. 신성모독입니다. 비본질이라는 변명으로 탈선을 포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신앙의 체계를 위하여, 우리가 고집하는 공회의 행정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비본질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둘 쉽게 바꾸면, 공회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앙의 체계에는 비본질은 없습니다. 예배 시간, 예배 횟수 한 번이라도,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행정은 진리는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신앙에 유익이 되고, 복음 운동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본질”이라는 핑계로, 인본을 따라 자유롭게 바꾸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결국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 되고,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