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계획과 하나님의 경영(잠16:1)
날짜 | 1970/01/01/09:00(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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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연구 |
발제 |
사람은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생이 항상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닥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인간의 입장, 인간 시각에서는 우연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 역사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실수는 우연인가?
부족함으로 사소한 실수로 본래 계획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실패”라고 합니다. 경영의 입장에서는 실패가 맞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적 입장에서는 실패란 없습니다.
우리의 실수도, 실패도 하나님의 성공이 됩니다. 그것을 예정하신 것도 하나님, 그 일을 주신것도 하나님입니다. 좋은 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나쁜 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일어납니다.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은 “내가 죄 짓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네가 지옥 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 이면에 있는 섭리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왜 이 현실을 주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 예정하심을 복되게 생각하면 모든 현실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복 없이 사용하면 그 사람만 비참하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왜 이 실수를 주셨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이 현실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고 깨닫는 바가 있다면, 그 현실, 그 실수는 신앙건설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실수를 단순한 우연으로 볼 것이 아니고,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적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현실이 내일 나에게 어떤 일이 될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도 미래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계획하고 그렇게 해보려고 할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 역사는 정확한 기록, 체계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것으로 미래를 통제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미래가 통제되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역사는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정확한 기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세월 속에서 지나다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는 것, 이것이 자연 역사입니다.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오늘 우리는 병원에서 몇 주, 몇 달 추측은 합니다. 그러나 추측일 뿐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지금 발육 상태를 보니 이 정도 되었겠구나, 앞으로 언제쯤 나오겠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교회도 “개척일”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매년마다 “설립 몇 주년”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우리 공회의 교회들은 기록마다 기억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여기서 어떻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둘 모이다 보니 교회가 되었고, 언젠가부터 교회의 이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교회의 역할을 했었으니, 어디를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개척이 이 날이다 저 날이다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중구난방이다 하겠고, 아는 사람이 보면 참 생명의 역사라고 할 일입니다.
우리 공회 찬송가는 1987년 4월 임시본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까지 사용될 줄 몰랐을 겁니다. 더 좋은 것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도 유지될 일입니다. 이렇게 공회는 인간 임의로 무엇인가를 확정하기를 조심하고, 처음에는 임시로 시작하다가, 세월 속에 계속되면 충성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 정도에서 그치기도 하며 자라왔습니다. 참 생명 있는 행정,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행정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 사람의 이해관계가 들어가면, 이렇게 운영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생명의 역사 섭리적 역사까지 생각한다면, 그것까지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공회는 모든 교인들이 목회할만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기르고 준비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학교도 없고, 학위도 없으니 “체계가 없다”고 할 것이고,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누구든지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모두가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어느 것이 더 복된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알게 될 일입니다.
오늘날 어느 교회 어느 교단도, 이런 생명역사 중심의 행정을 가진 곳이 없습니다. 세상의 경영학이 교회에도 들어왔고, 체계와 조직을 개편해서, 정확히 짜여 진 조직과 법을 따라 운영해 갑니다. 거기에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물론, 계획은 좋은 것입니다. 계획은 철저할수록 더 좋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완벽하다고 생각해버리면, 생명역사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우리 교단은 조직과 체계에 의해 운영되는 곳인가? 생명역사에 의해 움직이는 곳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