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단하는 자, 판단 받는 자 (민21:9)
날짜 | 1970/01/01/09:00(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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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연구 |
발제 |
민수기 21장 4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합니다. 길이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니, 불 뱀에 물려 죽어 갑니다. 다시 회개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보게 하라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 뱀에 물렸습니다. 몸에 독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뭔가 먹을 해독제를 주셔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반석에서 물을 내서, 그 물을 마시면 나을 것이라고 하셨다면, 믿을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쳐다보면 산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요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불 뱀에게 물리게 된 경위를 생각해봅니다.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습니다. “왜 이런 길로 인도하는가?” 그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께 대한 불만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내 생각에는 다른 길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이 길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의 실력에 대한 불신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교회를 판단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얼마나 실력 있고, 얼마나 잘났는지. “이 교회는 이래서 문제고, 저 교회는 저래서 문제다.” 남을 판단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그 판단으로 남을 정죄하는 것도 문제인데, 진리까지,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의 판단을 받아야하는 존재이지, 감히 말씀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들이 인본으로 진리를 판단합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상식적인가?
우리는 상식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가치는 세상의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송금지원칙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의 가치, 신앙의 가치는 세상을 판단하고,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의 판단 받고, 그 말씀에 따라 자기를 변화시켜야 하지, 자기가 말씀을 판단하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맞게 되도록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도, 자기 판단으로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 교회란 이래야 하는데” 그 생각까지는 좋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믿는 사람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지 않게 하실까? 다른 이유가 있으실까? 내 생각이 틀린 것일까?”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는데, “이 교회는 틀렸다.”며 교회를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되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이것은 진리 위에 자기를 올려놓고,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가 판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 선악의 기준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독단입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이 자기가 선악을 분별하겠답니다. 자기중심, 자기 판단으로 자기에게 좋게 하겠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자기가 판단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구약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신성모독입니다.
오늘 나는 진리를 판단하는 자인가, 진리의 판단을 받는 자인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인가, 그 말씀을 내 마음대로 이용하는 자인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주님이 놋 뱀을 쳐다보라고 하면, 그것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순종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