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신경 연구
날짜 | 1970/01/01/09:00(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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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연구 |
발제 |
사도신경이란, 사도들이 만들었다거나, 사도들에 의해서 전수되었다는 신화가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도신경이란,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한 것” 이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습니다.
사도란,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합니다. 이 12명의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이 어떤 것인가? 이 12명뿐만 아니라, 사도의 시대, 초대교회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가? 다 설명하려면 너무나 많은 글이 될 것인데, 그것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 고백은 우리가 모두 아는 내용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다 믿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기본인데, 기본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교리입니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한번 살펴봅니다.
첫째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먼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니 인간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 가운데, 모든 일을 행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무한의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천지의 창조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섭리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여기서 천지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물질세계와 영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늘 위의 하늘, 천국을 창조하셨고, 땅 아래의 땅, 지옥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천국과 지옥을 나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 사도신경의 첫 번째 고백입니다. 무엇으로 믿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저 멀리 계신 하나님, 그 위대하시고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래서 나와는 상관할 바가 없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이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능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받은 지위입니다. 우리는 감사히 받으면 됩니다.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면 됩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히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됩니다.
두 번째는,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우리를 자녀 삼으셨는데, 외아들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입양과 은혜로 자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성적으로, 영원 전부터 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외아들이라고 합니다.
옛날 이단 중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수많은 아들 중에 한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이단은 없습니다. 정말 없을까?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유일한 외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넓게 믿는 교회들 중에 이런 교리를 가진 곳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인간의 혈육 유전의 법칙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죄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오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동정녀에게서 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동정녀의 이름일 뿐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지나치게 숭배하는데, 마리아는 숭배할만한 존재는 아닙니다. 물론, 마리아의 신앙은 우리가 본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성모라고 불릴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약속을 따라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성취하신 것일 뿐, 마리아가 위대해서 택함 받은 것은 아닙니다.
왜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나셔야 했는가?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죄 없는 분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또 동시에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동정녀에게 나셨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실 수 있었고, 우리를 대신하실 수 있는 존재가 되셨습니다.
네 번째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주님의 죽음의 고난을 고백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 당시 로마의 관원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누군가 거짓으로, 신화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의 육신은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모든 생애로부터 죽음까지 우리를 위한 대신이었습니다. 대속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모든 고통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다섯 번째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만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그건 역사적인 사건일 뿐입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활의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하심이었습니다. 이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나도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살겠구나. 이 소망을 주셨습니다.
여섯 번째,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재림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날과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초림의 때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날과 그때는 몰랐으나, 약속의 주님께서는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약속을 따라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우리들은 재림의 때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으나, 약속의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심판을 기다리는 믿음, 심판을 준비하는 믿음입니다.
일곱 번째, “성령을 믿사오며”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제 삼위이시며, 성부, 성자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이단들도 많았습니다. 이것을 오해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알려 주신 만큼 알고, 믿으면 됩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는 방법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길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되게 하시는 능력은 성령님 밖에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적용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심을 믿는 것과 같이, 성령님만이 유일한 능력이심을 믿습니다.
여덟 번째, “거룩한 공회와” 여기서 공회는 “하나의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교회가 아닌, 모든 성도들이 포함된 초월적인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 된 연합체, 그 참 교회의 연합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아홉 번째,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렇게 한 몸, 한 지체가 된 성도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복된 교통이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칼이 칼을 날카롭게 하듯이, 서로의 믿음이 서로를 더 굳세게 합니다.
열 번째,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은혜는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이미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적으로 왜 여기에 왔는지 생각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의 공로가, 성령으로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 우리는 거룩한 공회에 속한 자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자라는 것은 그 몸의 지체라는 뜻입니다. 한 지체로서 모든 성도들과 하나 된 존재라는 말입니다. 거기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활 대속의 역사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 교회로의 부르심, 성도와의 연합 속에 죄 사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써 교회를 다닙니다. 혼자 골방에서 사활대속만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현실을 살아갑니다. 부르심을 따라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로서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거기에 죄 사함의 은혜가 있습니다.
열한 번째,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육의 부활을 믿습니다. 역사 속에 영만 부활한다고 하는 이단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과 육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의 구원, 완전한 구원, 기본구원의 은혜를 믿고, 육의 구원, 우리에게 맡기신 구원, 건설구원의 역사를 믿습니다. 그래서 그 부활의 때를 준비하고, 그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입니다.
열두 번째,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부활한 우리의 영육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건설한 만큼을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현실을 사는 동안, 영원무궁의 세계를 준비합니다. 그 준비는 오늘 현실에서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는 “준비한 만큼 영원히”입니다.
이 열두 가지에 믿음의 고백에 대해서 마지막에 “아멘”으로 마칩니다. 아멘이라는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진실로,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열두 가지에 대해서 진실입니다.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