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가는 주님께 맡기고 (고전4:3-5)
날짜 | 1970/01/01/09:00(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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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연구 |
발제 |
사람은 모든 순간에 판단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이것이 좋을까 저것이 좋을까? 이런 판단, 가치판단은 반드시 필요하며, 더 좋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실력, 수준, 자기 위체에 대한 판단, 평가를 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우리는 소문을 듣고, 남을 잘 평가합니다.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더라.” 그런데 그 판단이 얼마나 섣부른 것인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는 별로 생각해보지를 않습니다. 평가란,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점수란 정답을 기준으로 얼마나 맞다, 틀렸다를 매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답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토끼 꼬리 같은 지식으로 인생의 무엇을 알고 평가를 하겠습니까? 우리의 실력, 우리의 능력, 우리의 위치는 인생을 평가할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평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만 전지이시니,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평가만이 정확하고, 하나님만이 평가하실만한 자격이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평가를 받는 존재이지, 평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선악과 죄악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를 모방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려고 합니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임의로 그렇게 해버립니다.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얼마나 악한것인지도 모르고 그럽니다.
불신자들이야,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니 그렇다 해도, 믿는 사람들이 신앙으로 자기를 판단하고 남을 판단하는데 거침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적어도 저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꼭 집어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성경에 적어놓으셨습니다. 두고두고 읽고 깨달아서, 절대 그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집사가 되면 자기가 평신도보다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장로가 되면 집사보다 낫다고 생각을 하고, 목회자가 되면 장로보다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천주교식”이라고 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그것을 개혁한 “만인 제사장”입니다. 루터가 출발할 때부터 이 말을 하고 시작했는데, 오늘 개신교회들은 전부가 천주교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항상 안위를 얻고 싶어합니다. 불신 세상은 물질로 안위를 얻고 싶어하고, 믿는 우리는 신앙의 안위를 얻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기 신앙의 수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평가를 하고, “내가 이만하면” 하고 신앙의 안심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 실력으로는 우리의 신앙을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전지의 하나님만이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우리는 그 평가를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평가의 날까지 우리는 계속 마음 한편이 불안할 것입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어디까지 달려왔는가? 어디까지 달려왔든지, 우리는 그 걸음을 계속해야 합니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스스로 안심할 수 없고, 안심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평가를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의 평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회에는 공회병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공회에는 백목사님을 통해서 복된 교리, 귀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타 교단에서도 헤매고 있는 많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신앙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알고 있으면, 남들 보다 신앙이 뛰어난 줄 착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지식, 교리 지식은 루터보다 낫고 칼빈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루터보다 낫고 칼빈보다 나은가?
공회병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개혁주의”를 말하는 다수의 교회들이 역사 속의 교리문서, 신앙고백서, 신학 서적들을 공부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남들 보다 신앙이 나은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알아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아는 것과 신앙의 깊이가 있는 것은 별개입니다. 신앙은 행하는 만큼 자라는 것이지, 아는 만큼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은, 행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행하였는가? 단순히 외적인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에는 우리의 내면도 포함됩니다. 어떤 마음으로 행하였는가? 이것은 사람으로서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내가 나의 마음을 모를 때도 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에는 동전 두 개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에는 가장 연보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인간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 대한 판단, 모든 평가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우리에게 주신일, 우리가 할 일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평가는 우리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은 주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판단받을 그 날을 준비하며 오늘도 힘써 충성하고, 모든 요소, 모든 행위, 모든 마음, 모든 생각이 하나님께 칭찬받을만한 일이 되도록,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다시 힘쓰고, 또 고쳐나가고, 그렇게 계속 자라가는 것, 이 일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 위치를 지키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고, 이것을 벗어나 판단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남도 평가할 직위를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평가는 전지의 하나님께 맡기고, 그 판단에 순종하고, 우리는 자기 신앙 양심을 따라 힘써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위치, 우리의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