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연구(마 6:9-13)

■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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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도문 연구(마 6:9-13)

날짜 1970/01/01/09:00(목)
분류 연구
발제
연구 0 78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늘에 계신” 하늘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늘은 공간입니다. 땅에 붙어 있는 우리 위에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하늘이라 함은 공간적으로 위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위에 있는 공간, 육체적으로 그 위치가 위에 있는 하늘일 수도 있고, 물질계를 초월하는 위에 있는 영계를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면이든 하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는 공간적인 차이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하늘이란, 가치적으로 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물리적, 공간적 차이가 아닙니다. 가치적으로 높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혹은 모든 피조물과 비교했을 때, 존재 가치적으로 높으신 분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특별히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이라는 뜻은, 공간적 차이보다는 이 가치적인 차이에 가깝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 계신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이신데, “하늘에 계신” 가치적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은 우리가 기도할 대상에 대한 고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존재 가치적으로 “하늘”이라는 표현밖에 더 할 수 없는 최고의 하나님,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하늘 아버지께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우리”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언어적인 특징도 생각해야합니다. 한국말은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가족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영어권 나라들, 유럽의 언어는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가족입니다. 그쪽은 단수와 복수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성경은 영어권에서 번역된 글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도 단수와 복수의 구분이 엄격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표현은 한국 사람들처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기도할 대상이 되는 그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로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란, 나와 남을 포함합니다. 반대로 너희란 나는 빼고 남들입니다. 지금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 우리란, 예수님 자신과 기도를 배우는 우리 개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우리가 연합되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야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지 못하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항상 주님과 나와 함께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또 우리라는 것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 모두의 아버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아버지입니다.


믿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은 연합됩니다. 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됩니다. 그런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화평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먼저 화평하고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 된 우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대화가 기도입니다. 특별히 지금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에는 크게 일곱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란 하나님과 깊은 대화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대화하는 상대, 우리가 독대하는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거룩”이란 구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란, 세상과 구별된, 세상과는 비교조차 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과 위대하심과 깨끗하심과 완전하심과 영화로우심과 크심을 말합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역사입니다. 그 역사 그대로 불려지는 것이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존재가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롭고 영광스럽고 마땅히 받으실만한 존경을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모든 역사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복되게 거룩하게 되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기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미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히 높으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것은 악령,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고 주님의 나라, 은혜의 나라가 우리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임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나라의 기준은 통치권에 있습니다. 윤석열대통령의 통치권이 인정되는 곳은 한국입니다. 김정은수령의 통치권이 영향을 미치는 곳까지는 북한입니다. 통치권이란 법적 효력을 말합니다. 그 법이 실제적으로 효과적으로 인정되고 적용되어 지는 것이 통치입니다.


이 땅은, 타락한 우리의 심신은 사단의 나라였습니다. 사단의 통치권 아래 있었고, 그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서 자유를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노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사활대속 공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 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 하늘나라의 통치권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면,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그 통치권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기도,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간구입니다.


세 번째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주기도문의 셋째 기도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의존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 살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은 하늘에서 천사들이 순종함으로 행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완전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제 이 땅에서, 오늘의 순종은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천사처럼 순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원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천사들의 순종과 같이 오늘 우리의 순종이 복되고 완전한 순종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힘써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힘써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우리 삶속에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네 번째 기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용할”정도면 충분합니다. 만나는 항상 “일용할”만큼만 주어졌습니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여 충성, 남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하여 충성하는 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것을 주십니다. 내일의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일용할 만큼의 충성이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다른 마음을 품게 됩니다.


양식이란, 기본적으로 먹는 것입니다. 육체의 필요에 의해 먹는 것입니다. 먹었으면, 이제 힘써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오늘 하루 먹고 오늘 하루 충성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은 주님의 은총과 자비하심아래 채움을 받고, 매일 매일 신앙으로 자라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냥 자기만 살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의 용서를 받았으니,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크신 용서하심으로 인하여 나도 형제를 용서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용서하고 행동으로 용서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화평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우리와 만물 속에 참된 화평을 주셨습니다,


이제 화평의 자녀 된 우리가 가는 곳, 만나는 사람, 경험하는 사건들 마다 화평의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그 시작은 “내가 남을 용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어떠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귀한 것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닮았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로서, 주님과 같이 행해야겠습니다.


불화하는 사이가 있으면, 먼저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용납해야합니다. 그러면 화평이 됩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저 사람이 잘못한 겁니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말이든지, 생각이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큼 억울하십니까? 주님만큼 의롭고 당당하십니까? 도대체 주님이 무슨 죄를 지어서,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전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았으니, 그 받은 대로 전하는 것이, 은혜의 값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가 되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합니다.


여섯 번째,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모든 불행의 원인, 모든 사망의 근거는 죄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상이 죄악세상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 죄 된 본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이 땅의 어두움에서, 온갖 어려움과 환란과 고통과 유혹과 악령의 공격속에서,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보호하시고 건져주셔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구하여 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대적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녀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기도입니다. 


여섯 가지 기도를 마친 후 마지막 고백, 일곱 번째 기도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 하나님을 믿고 찬송하는 고백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우리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멘”으로 마치는데, “아멘”이라는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진실로.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 가지 의미입니다. 내가 진실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습니다. 정말 이 기도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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