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견] 가감없는 정확무오 말씀 (계 22:18-19)
날짜 | 1970/01/01/09:00(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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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주제연구◀ |
발제 |
지난 양성원에서 히브리어는 본래 모음이 없이 자음만 있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자음으로만 전수되어왔고, 그것을 부모가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이어져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히브리어가 사어가 되면서, 마소라 학자들이 성경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모음을 붙였습니다. 그러면, 그 작업 중에 실수는 없었을까?
양성원 질문 중에, 특히 인명, 지명 같은 경우에 들은 발음에 따라, 달라진 것은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래서 성경 곳곳에 한 사람이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된 경우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다르게 불린 것도 있고, 단순히 모음의 차이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실제로 어떻게 불린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단어를 글로 적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 했고, 적었다할지라도, 결코 발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니, 이제는 그 발음을 알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고, 오류가 없는 불변의 진리인 줄 알았는데, 이런 사실을 배우게 되면, 신학생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쉽게 의심해버립니다. 그래서 신학을 배울수록 신앙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차라리 모르고 믿는 것이 나은가? 그렇다면 속이는 것이 될 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처음 성경, 성경의 원본은 무오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원본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본으로만 전해져 왔고, 심지어 우리가 가진 성경은 몇 번의 수정을 거친 번역본입니다. 게다가 히브리어의 직접적인 번역도 아닙니다. 이것을 성경이라 할 수 있을까?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조품입니다. 세상 학문 세상 지식의 기준으로 신앙을 따지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오늘날 신학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적어도 신앙이란, 세상의 기준과는 달라야 할텐데, 신앙의 관점으로 따져볼 줄을 모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믿었을까?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구약성경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믿었을까? 여러 설명은 각설하고, 우리는 역사속에서 선하신 뜻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공회는 각자의 현실은 각자의 에덴동산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성경이 주어진 것은, 단순히 보면 사람의 노력, 수많은 번역, 연구, 수정을 거친 모조품같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만으로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건설하는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원본 성경은 일점 일획까지도 정확무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번역성경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측면에서는 정확무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신앙을 위한 말씀으로는 이 성경, 이 복음, 이 말씀은 정확무오입니다.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영복이 있습니다.
학문 세계의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인본의 가치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세계의 기준으로 본다면, 제 말이 이해될 것입니다.